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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그추억] (2) 검정 고무신

기사입력 2020.02.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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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특집]

    생활문화는 옛 부터 전해내려 오는 그 지역의 삶이자 우리조상들의 지혜와 생존 전략이다.

    넘쳐나는 생활정보와 전자기기,산업화,도시화에 삶은 때로는 우리들의 가슴을 짓누름에 살아가야하는 팍팍한 현실입니다.

    일을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 분간 조차 힘들때가 많습니다.

    본지는 잊혀져가는 지난날 우리네 삶을 잠시 되돌아보고 조상들의 생활지혜와 자취의 숨결을 회상해 보기 위해 “그 시절 그 추억”란을 주 1회 기획 게재 합니다.

    이 글을 읽다가 잠시나마 그 시절을 회상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어면 합니다.

    특히 이 난에 소개되는 각종 소재나 내용들은 각 지역의 삶의 방식이나 시각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날수 있어며 특정지역이나 인물,성별,나이,종교,직업등을 비하 하거나 편견 하지 않습니다 . -편집자 주 -

     

    (2)검정고무신

     

    입춘도 지났고 때 마침 날씨도 따뜻한 휴일이라 창문을 활짝 열고 새봄맞이 대청소를 했다.

    겨우내 집안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걷어 내던중 신발장엔 언제 구입했는지 모를 정도로 빼곡히 쌓인 신발들을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나 혼자 중얼 거렸다.

    “요즈음 이렇게 질 좋은 신발들이 지천인데 어릴적엔 검정고무신 한 켤레는 그렇게 소중 했는지”...

    60~70년대 유년시절 살아 온 세대는 요즈음 집안 신발장에 멀쩡한 신발들을 신지도 않고 차곡히 쌓여 있는 것을 보면 그 시절 검정고무신 한 컬레도 마음껏 못 신던 그때를 생각할땐  참 세상 살기 좋아졌다는 느낌을 한번쯤 느꼈을 법 하다.

     

    나 역시 어릴적 신었던 검정고무신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부모님께서 일년에 한 두번 사다주시는 검정 고무신은 그 어떤 선물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그 나마 좀 잘 사는 집은 검정고무신 보다 한 수 위인 흰 고무신을 신었지만 나는 검정고무신과 흰 고무신을 번갈아 신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고무신을 기워 신거나 때워 신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새 고무신을 얻어 신을 수 있을지 생각해 굴뚝에 한쪽을 밀어 넣어 잊어 버렸다고도 했고,잘 피어오르는 장작불에 일부러 신발 밑창을 태워 낡게 만들어야 새 고무신을 빨리 얻어 신을 수가 있었다.

     

    검정고무신.jpeg

     

    며칠전 설이 지났다.해마다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께서 설칠(설빔)이라고 시장에서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사오셔서 발에 맞는지 신겨 보셨다.

    반질한 색깔에 광이 나는 검정고무신은 흰 고무신 부럽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고무신을 내게 신어보게 하고 엄지로 고무신 콧등을 쿡쿡 누르시며 딱 맞다고 하셨다 말 그데로 십문칠이었다.

    그리곤 한 말씀 하셨다."지금 신던 고무신을 다가오는 설날까지 신으면 설날 아침에 새 고무신을 신게 해 주겠다"며 그날로 어딘지 감추어두고 설날 아침에 꺼내어 주셨다.

    어린 나로선 그 며칠은 정말 길었다 빨리 설이 와야 새신발을 싣을 텐데...

    도저히 새 신발이 신고 싶어 그 몇일을 못기다려 나는 꾀를 내기도 했다.

    반쯤 낡은 신발을 일부러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 더 낡게 만들기도 했다.

    또 찢어지지도 않은 신발을 일부러 유리 조각이나 사금파리로 흠집을 내고 흙을 묻혀 더 낡게 만들었어나 어머니는 나의 꾀를 훤히 알고 계셨기에 통하지 않았다.

    비로소 설날 아침에 그 검정고무신을 신고 몇 바퀴 마당을 걸어며 누군가가 새 신발인 그 검정고무신을 신은 것을 좀 봐주기를 바라면서 폼을 잡고 다닌 기억이 새롭다.

    지금 생각하면 검정고무신은 참 좋았고 내겐 최고의 보물이었고 장난감 이었다.

    떨어져 신지도 못하는 고무신을 잘 보관해 두다가 한 두달만에 찾아오는 엿 장수에게 고무신 한 컬레로 엿을 바꿔 먹을 수 있었기에 내겐 최고의 소중한 품목 이었고 달콤한 그 엿 맛은 세상 최고였다.

    또 특별한 놀이도 없던터라 고무신은 장난감 용도로 다양히 활용되었다.

    고무신 두짝을 포개 트럭모양을 만들어 신발에 모래를 실어 나르고 길을 만들어 지는 놀이를 하면 마치 지금의 아스팔트길보다 더좋은 모래길이 완성 되기도 했다.신발을 반쯤 벗고 발로 차서 신발 멀리 날리는 놀이를 하다가 어쩌다 잘못차면신발이 엉뚱한 남의 집안으로 날아가버리거나 인근 하수구나 꼬랑(냇가)에 빠지기도 하면 한쪽 맨발로 찾어러 가야 할땐 여간 곤란 하기도 했다.

    고무신 콧등을 마주치면 기차가 되기도 했고 꼬랑에서 물고기나 고둥을 잡으면 고무신에 물을 채워 고기를 살릴 수 있는 용도로 사용 하기도 했어나 지금은 그져 추억의 그때를 기억 할뿐이다.

    청소를 마칠쯤 집사람에게 물었다“신발장에 꽉 쌓인 신발들은 신지 않는 거냐”고 물으니 “철(계절) 지나고 유행 지난 신발을 요즘 누가 신느냐”는 되돌아 오는 답변에 나는 그져 멍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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